정말이지, 최근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난데없는 소리였다. 놀란 나머지 삼키지 못한 탄산수가 턱 끝에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가 웨딩샵이라는 현실과 닦는다는 행위를 잠깐 잊어버린 리즈가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약 4초가량의 공백이 더 필요했다.
이러나저러나 둘 다 양친을 부를 수 없는 입장상 상견례를 생략했을지언정, 리즈 라파르쥬와 로셀레 쿼츠의 결혼식 자체는 기정사실이었다. 식 역시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으니 따로 걸리는 것도 없다. 문제는 그녀의 기행이었다. 사회는 디노가 하는 게 좋겠다는 둥 축가를 마르세우스에게 맡기겠다는 둥 하객 테이블마다 탄산수를 놓겠다는 둥 하더니 이제는 신랑에게 웨딩드레스를 입으란다. 리즈는 부득이하게 축축해진 입가를 소매로 대충 훔쳤다.
“그런 건 보통 신부가 입지 않아?”
“맞아. 보통은 그렇지. 그리고 너에겐 턱시도가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로셀레. 알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그래도 난 네가 입고 걷는 모습도 보고 싶은걸.”
당당하게도 시착試着한 웨딩드레스의 자락을 걷어 올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라. 나른한 얼굴로 권하는 (말이 좋아서 권하는 거지, 저렇게 말한 시점에서 이미 준비는 끝내놨으리라.) 로셀레에게서는 물러날 기백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분명 교제를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이런 취향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같은 회상이 리즈의 뇌리에서 작은 신호를 보냈다.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정말? 딱 잘라 거절할 줄 알았는데. 체념이 빠르네.”
“어차피 볼 사람도 없고, 잠깐 입었다가 벗는 것뿐이잖아. 이런 걸로 만족한다면야.”
“저기, 만족 그 이상인데.”
“그러냐? 대신 식 당일에는 안 입어.”
“그래. 입어주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인걸.”
리즈의 검지 끝이 로셀레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이전부터 그녀의 장단에 어울려주기로 했을 때마다 행하는 신호이자 장난이었다. 알 리가 없는 로셀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다.
리즈가 예상했던 대로, 혹은 로셀레가 준비한 운명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직원을 통해 큼지막한 웨딩드레스가 시착실 안으로 전달됐다. 허리를 바짝 조이는 코르셋이 생각보다 버겁다. 남자와 여자의 골격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녀가 이걸 똑같은 방법으로 입었을 걸 생각하면 조금은 인상이 찌푸려지고 마는 것이다.
“이, 이게……저에게 맞긴 할까요?”
“아마 잘 맞을 거예요. 신부분께서 사이즈를 전부 알려주셨거든요. 그 치수에 맞춰서 만들었으니 신랑분께서는 걱정 마세요.”
“그렇습니까, 윽…….”
그렇게까지 과하게 조이지는 않았지만 사복이나 정장을 입을 때에 비하면 호흡에 조심스러움이 더해지고 만다. 조인 채로 고정하는 코르셋 자체의 불편함도 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숨을 들이쉬었다가 옷이 터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코르셋 다음에는 지퍼였다. 바지를 입을 때나 올리던 지퍼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무척이나 기묘했다. 드레스라는 것 자체를 입어 볼 기회가 없었던, 그리고 있을 리가 없던 리즈에게 있어선 하나하나가 별세계의 체험이었다. 그나마 별도로 높은 굽의 구두나 하늘하늘한 소재의 장갑 따위를 준비하지 않은 건 배려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고마웠냐고 묻는다면, 글쎄. 어쩌면 그저 로셀레가 주문하는 걸 잊어버린 걸 수도 있다. 리즈는 직원이 직접 발 사이즈에 맞는 구두를 찾으러 가기 전에 미리 운동화를 신었다. 기왕이면 빨리 끝내고 싶었다.
“얼마나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응. 얼마든지.”
어깨가 휑한 게 마치 옷을 걸쳤음에도 벗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시착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결국 면사포까지 걸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런 건 직장 동료나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곱게 쓰고 입장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던 정도가 면사포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스스로 몸에 걸치게 될 날이 올 줄은, 과거의 리즈 자신은 물론이고 수 십분 전의 리즈 자신조차 알지 못했더랬다. 드레스 끝자락이 더럽혀지지 않게끔 직원이 붙잡아주는 시점에서 리즈는 벌써 몇 번째인가 마음속의 체념을 되풀이했다.
시착실의 문이 열렸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정면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손으로 막거나 제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매사에 관심이 없어보이던 보라색 척안이 유독 조명 빛을 머금고 보석처럼 반짝였다. 뺨이 붉게 물든 것은 비단 화장 때문만은 아니리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정말 예뻐, 리즈.”
“예쁘다고?”
“음…. 예쁘고, 멋져. 드러난 어깨가 섹시해.”
“가끔은 네 판단 기준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너도 그래? 나도 잘 모르겠어.”
“그걸 본인이 모르면 누가 알아?”
“글쎄. 그런 건 아무렴 어때.”
한참 시선을 얽던 두 사람에게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신 거울로 향했을 때 또 다시 동시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두 사람이(그것도 둘 중 하나는 좋은 골격의 다 큰 남정네였다!) 거울 속에서 마주 웃어주고 있었다. 리즈는 ‘이번엔 내가 턱시도를 입을 차례다’라며 나서려드는 로셀레를 말려야 했다. 가볍게 옥신각신거리는 예비 신혼부부를 지켜보던 뒤에서 금발의 직원은, 머지않은 그들의 앞날을 상상하며 고객 앞에서 나올 뻔한 흐뭇한 웃음을 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