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다면 우습고 살벌하다면 살벌할 분위기에 그만 시라이는 마른침을 쓰게 삼켰다. 갓난아이 시절 부모의 손에 버려진 이후로 일생을 자연 속에서 들개들과 함께 보내며 인간을 증오한 ‘들개의 아들’ 아오미네 다이키. 약자들과 병자들을 불러들여 보호하면서도 세이린 마을의 수호와 번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마을의 지도자’ 카가미 타이가. 원래라면 결코 양립할 수 없을 두 존재가 지금 한 자리에서 얌전히, 그것도 한 밥상을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이 상황이 더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시라이. 이거 산에서 먹는 고기보다 조금 느끼하지 않냐?”
“아까부터 그 표정은 뭐냐고!! 싫으면 먹지 마!!”
“아오 군, 타이가, 식사 앞에서 험악해지지들 말게. 응?”
손가락 끝에 진득하게 묻어버린 양념을 핥는 내내 뚱한 표정이던 아오미네가, 제지를 위해 뻗어진 시라이의 팔을 한껏 물었다 놔주었다. 뺨 한가득 밥과 반찬을 욱여넣은 채 눈으로만 경악하는 카가미와는 반대로, 시라이는 일그러진 흉터 위에 새로 잇자국이 새겨진 제 팔을 몇 번 쓸어보고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사슴신과 주변 일대의 운명이 갈렸던 일말의 사건 후에 말했듯 그는 좋아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싫다. 그리고 인간의 편을 드는 순간의 그도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런 불만의 표현이 바로 이것인 셈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자신과 함께 살아가자고, 그렇게 말했던 시라이를 진심으로 믿어보기로 결정했었기에 때때로 이렇게 반동으로 돌아오는 배신감의 맛 또한 깊었더랬다.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처치, 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던 탓이다.
아오미네는 방금 전까지의 제 기분과 행동을 빠르게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맨손으로 치루는 뜨거운 밥과의 결전 쪽에 집중력을 돌리기로 했다. 그쯤에 자연스럽게 다시 젓가락을 드는 시라이를 향해서, 문득 입안의 음식물을 열심히 씹어 삼킨 카가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저 녀석은 젓가락을 쓸 줄 몰라?”
“내가 저번에 알려주긴 했네만 본인이 영 좋아하지를 않아서 말일세. 인간과 같아질 셈도 없고 저게 더 편하다고 하더군.”
“진짜냐……. 뼛속까지 들개네.”
“뭐, 그렇지. 그러니 ‘들개랑 결혼할 셈이야?!’ 라면서 대놓고 소리 질렀던 자네의 말도 틀리지 않겠지.”
“그, 그건 그냥 놀리려고 했던 거니까 이젠 좀 잊어! ……세요!”
“하핫, 선처는 해보마.”
고깃점을 들고 통째로 물어뜯다가도 위협적으로 힐끔 노려보는 모습은 실로 야생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동시에 일생을 자연과 함께한 자가 취할 수밖에 없을 행동이기도 했다.
마을과 카가미를 습격했던 아오미네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주민이 무기를 들었을 때도, 만나자마자 아오미네와 카가미가 짐승처럼 웃었을 때도, 그리고 무언가가 저에게 날아오는 걸 느낀 지금에도, 시라이는 사랑스러운 제 혼약자에게 시선을 고정하다가도 작은 기척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곤 했다. 다만, 고개를 든 시라이의 시야는 이미 아오미네의 커다란 손이 가로막고 있었다. 구태여 막지 않더라도 시라이 혼자서도 능히 피하거나 잡을 수 있었겠지만 아오미네에게 그런 건 나중 문제였으리라. 저에게 걸맞지 않은 감정이라고 시라이 스스로 접어버리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의도가 순수한 기쁨으로 와 닿았던 건 변함이 없다. 카가미가 던져준 건 (정확히는 아오미네에게 막혀 떨어진) 온기가 느껴지는 검이었으며 다른 한 쪽은 크기에 비해 가볍게만 느껴지는 짐뿐이었지만.
“그건 전에 부탁 받았던 칼. 부러지면 얼마든지 고쳐줄 수 있지만 잃어버리진 마.”
“전에 쓰던 것보다 잘 벼려졌군. 정말 고맙네만, 이 짐은 어디에?”
“그거? 새 옷이랑 새 단도. 산에서 살아도 일단은 인간이니까 겨울엔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하라 했어. 그 짐은 저 녀석 거니까 저 녀석이 들고 가라고 해.”
까딱, 하고 고개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저 녀석이란 게 누구를 의미한 말인지는 잘 알 수 있다. 아, 그래. 분명 카가미 쪽에서 말을 걸었다면 잡담이건 도발이건 아마도 일절 무시하거나 일방적인 선제 위협으로 대답했을 게 분명했으리라. 카가미가 아오미네를 사람으로서 받아들였을지언정, 아오미네는 아직도 시라이 류노스케 이외의 인류를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가능했던 추측이다. 한숨에 가까운 시라이의 웃음을 카가미의 직감이 놓치지 않았다.
“미안하네, 타이가. 이미 여러 신세를 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오 군 몫의 신세까지 져버렸군.”
“엉? 이런 건 그냥 당연하잖아? 게다가 저 녀석이 아프기라도 해서 싸울 상대가 줄어들면 싫으니까. 신세나 빚 같은 거라고는 생각 안 해.”
어느 의미에서는 승부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의미에서는 무자각의 신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라이는 무심코 카가미의 붉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이로 따지나 체격으로 따지나 그렇게까지 어리다고 여길 만큼의 차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시라이에게 있어 카가미란 어린 두령이자 아직 성장 중인 호랑이였다.
순간, 아오미네가 카가미와 시라이의 사이에 끼어들어 시라이의 손을 낚아챘다. 어쩐지 잇새에서 새어나온 소리는 얼핏 제 영역을 침범한 자에게 경고하는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닮아있었다. 놀란 카가미도, 어리둥절한 시라이도, 심지어 당사자인 아오미네조차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부정의 여지가 없다. 억지로 일으키려 하는 손에 담긴 힘은 제아무리 시라이라 하더라도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언제나 무언가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손을 뿌리치거나 역으로 당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지만……. 그나마의 저항으로서 어정쩡한 자세로 반만 일어나주었지만, 한 번 마음을 굳힌 아오미네는 끌어당기는 걸 포기할 줄 몰랐다.
“시라이. 이제 가자.”
“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가려는 겐가? 하룻밤 정도는 묵고 가도…….”
“……됐으니까, 따라 와.”
카가미 타이가가 기억하는 시라이 류노스케는 듬직하면서도 제 뜻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혼약자를 앞에 둔 그는 그저 물렀다. 재차 당기는 손길에 이기지 못하고 일어선 것만 봐도 충분히 그랬다. 일어나는 도중에도 무기만큼은 잊지 않고 다른 쪽 손에 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시라이의 허리에는 아오미네의 손이 마치 처음부터 그곳이 원래 있을 자리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찾아가 있었다. 일어난 자리에 덩그러니 놓였던 짐을 다시 건네주는 카가미에게서, 아오미네가 거의 낚아채듯 난폭하게 받아든 탓에 무언의 기싸움이 벌어진 건 당연했다.
“다이키, ……큼. 아오 군도 참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니까. 역시 사람이 많은 곳이라 예민해진 겐지.”
“인간 자체가 불편한 건 맞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니까, 좀.”
“알겠으니 인상 쓰지 말게. 인상 쓰면 무섭잖나. 내 아무래도 며칠 더 아오 군과 같이 있어야 할 것 같네. 나중에 다녀와서 마저 이야기 나누세, 타이가.”
“어? 어어. 잘 다녀 와, 세요……?”
이번에야말로 시라이는 제 발로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 발로 자리에서 걸어 나갔다. 달리 걱정할 게 있다면 그건 야생에서 길러진 아오미네의 힘이다. 허리를 쥔 손이 어찌나 강한 모양인지 문이 닫히자마자 시라이의 투덜거림이 카가미에게 들렸을 정도다. 넋이 나간 채 인사 차원에서 손을 들고 있던 카가미는 뒤늦게 허망해진 손을 수습해야 했다.
“뭐가 저렇게 급해? 아오미네 녀석. 중요한 거라도 두고 왔나…….”
“역시 눈치를 키우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저건 누가 보더라도 아오미네 군의 질투입니다.”
“그런가? 난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억?!! 쿠로코 너 이 자식!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만. 오늘 돌아왔거든요. 다녀왔습니다, 카가미 군.”
한두 번도 아니건만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는 카가미의 내성에 오히려 쿠로코 쪽이 익숙해진 투였다. 분주하게 식기를 치우는 사내들 사이에서 쿠로코는 금방 조용해진 카가미를 관찰했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게 곧 쿠로코의 취미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리고 다시 위로. 쿠로코의 의지에 따라 바쁘게 바뀌던 시야 중에는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하던 참인 투박한 손이 제일 선명하게 들어왔었다.
……질투하고 있는 건 카가미 군도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요.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를 사사로운 생각을 의지로 삼키는 일은 아주 조금 힘들다. 쿠로코의 귀환을 환영하며 들뜬 카가미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어쩌면 덕분에 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멀지 않을 미래사를 예견한 그의 한숨이 누군가의 귓가에 닿는 일 없이 연하게 흐려졌다.